[인터뷰4] “여성주의적 관점서 피해자 지원”…‘여성학 전공’ 변호사들이 뭉쳤다

성범죄 가해자 전담법인이 속속 설립되고 여성혐오 범죄가 끊임없이 반복되는 상황 속에서 젠더기반 폭력 전문 법무법인이 탄생했다. 바로 법무법인 혜석(慧釋)이다. 여성주의적 관점에서 피해자를 지원하고, 젠더기반 폭력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법무법인이 필요하다는 문제의식 하에 설립된 혜석에는 여성학을 전공한 세 명의 변호사가 피해자를 위한 법률지원에 힘쓰고 있다. 가해 사건의 변론은 맡지 않는다.

최근 혜석은 ‘이화여자대학교 집회 여성혐오 폭력사건’을 제1호 공익사건으로 결정하고 폭력 피해자를 법률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해당 사건은 지난 2월 26일 이화여대에서 열린 윤석열 탄핵 찬성 집회에 극우 유튜버들이 난입해 탄핵 찬성 손팻말을 훼손하고, 학생들에게 ‘너 페미냐’, ‘시집 제대로 가겠냐’ 등의 여성 혐오적 발언을 퍼부은 사건이다. 이중 극우 유튜버 프리덤라이더(현재는 ‘상우TV’로 채널명 변경)는 이화여대 한 재학생의 멱살을 잡고 밀치는 등 물리적 폭력을 행사한 것으로 나타났다. 혜석은 해당 사건을 ‘여성혐오에 기반한 조직적 폭력 행위’로 규정하고, 피해 학생을 대리해 지난달 유튜버 프리덤라이더에 대한 고소장을 접수했다.

법무법인 혜석의 박수진 대표 변호사는 여성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남성 유튜버들이 이화여대라는 여성 교육기관을 특정해 집단적으로 난입했다는 점에서 단순한 정치적 견해 차이를 넘은 여성혐오에 기반한 폭력이라고 판단했다”며 “헌법에 보장된 집회의 자유를 행사하는 공간이 폭력으로 위협받는 상황은 민주 사회에서 용납될 수 없다”고 밝혔다. 다음은 박수진 변호사와의 일문일답.

이화여대 학생을 어떻게 법률적으로 대리하게 됐나.

“사건에 대한 보도를 접하고 피해 학생에게 법률지원을 제안했다. 피해자분은 집회 현장 인근을 지나다 유튜버가 집회 참가자들을 동의 없이 초근접 거리에서 촬영하며 라이브방송에서 모욕행위를 하는 것을 보고, 이를 만류하는 과정에서 멱살을 잡히는 폭행을 당했다. 피해자는 본인의 피해 사실뿐만 아니라, 앞으로도 계속될 수 있는 이러한 여성혐오적 폭력을 막기 위해 법적 대응이 필요하다고 판단해 고소를 결심하게 됐다.”

이번 사건을 혜석의 제1호 공익사건으로 선정했다.

“혜석에서 이 사건을 제1호 공익사건으로 선정한 것은 현시대적 맥락에 대한 깊은 문제의식 때문이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는 슬로건으로 당선된 이후, 우리 사회의 성평등 추진체계는 눈에 띄게 후퇴했다. 정부 부처의 성평등 정책이 축소되고, 젠더 관련 예산이 삭감됐으며, 여성가족부 폐지 논의까지 진행됐다. 이러한 국가적 후퇴 속에서 여성혐오는 더 이상 개인적 차원의 문제가 아닌 정치적, 사회적으로 용인되는 현상이 됐다.

대선 이후 3년이 지난 지금, 한국 사회의 가장 오래된 여성 고등교육기관인 이화여대에서 이처럼 노골적인 여성혐오 폭력이 자행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이는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는 담론이 만들어낸 필연적 결과다. 우리 법인은 이번 사건이 단순한 폭행이 아닌 국가 권력의 젠더 감수성 퇴행과 여성의 공적 발언에 대한 조직적 억압의 징후라고 판단했다. 따라서 이 사건에 대한 법적 대응은 단순히 한 개인을 보호하는 차원을 넘어, 민주주의 사회에서 여성의 목소리와 안전이 보장돼야 한다는 근본적 가치를 지키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망설임 없이 첫 공익사건으로 이 사건을 선택한 이유다.”

이번 사건을 ‘조직적 여성혐오 폭력에 기반한 폭력 행위’로 규정했다. 이 같은 폭력행위의 원인과 이를 해결하기 위한 대책은 무엇이라고 보나.

“이번 사건의 근본 원인은 여성의 사회 참여와 목소리에 대한 반감과 혐오에 있다. 특히 젊은 여성들의 정치적 의사 표현에 대한 공격성이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고소장에 명시했듯 다른 대학의 집회에서는 이런 물리적 충돌이 일어나지 않았는데 유독 여대에서만 이런 폭력이 발생했다는 점이 이를 뒷받침한다.

이번 사건은 디지털 시대의 여성혐오가 어떻게 현실 공간으로 확장되는지를 보여주는 전형적인 사례다. 수전 팔루디가 ‘백래시(Backlash)’에서 분석했듯이 여성의 권리가 확장되고 사회적 진보가 이뤄질 때마다 이에 대한 반동과 저항이 발생한다.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것은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현대적 형태의 백래시다. 유튜브와 같은 플랫폼이 여성혐오 콘텐츠를 생산하고 유통하는 통로가 되고 있으며, 이를 통해 수익을 창출하는 비즈니스 모델까지 형성됐다. 피고소인과 같은 유튜버들은 이러한 환경에서 여성, 특히 페미니즘에 관심을 가진 여성들을 표적으로 삼아 조직적인 공격을 자행하고 있다.

이화여대라는 상징적인 여성 교육기관에서 열린 사회 변화를 촉구하는 집회를 폭력적으로 방해한 행위는, 팔루디가 지적한 ‘여성의 진보에 대한 사회적 거부반응’의 현대적 표현이라고 볼 수 있다. 디지털 공간에서 시작된 혐오가 실제 물리적 폭력으로 전이된 것이다. 특히 주목할 점은 이들이 ‘탄핵 반대’라는 정치적 명분을 내세우고 있지만, 실제로는 여성 대학생들을 특정해 공격했다는 것이다. 이는 정치적 의견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행위일 뿐만 아니라, 여성의 공적 영역 참여와 발언에 대한 백래시적 반응이다.

이러한 현상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개별 사건의 가해자를 처벌하는 것을 넘어 이를 가능하게 하는 디지털 생태계와 사회구조적 문제에 대한 종합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백래시는 여성의 진보가 있을 때 나타나는 현상인 만큼, 이러한 반동을 예상하고 대응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

여성학을 전공한 변호사들이 중심이 돼 피해자 관점에서 법률지원을 제공한다는 부분이 인상 깊다.

“여성학은 단순히 성폭력 문제만을 다루는 학문이 아닌 성별에 따른 사회적 위계와 그로 인해 발생하는 다양한 형태의 불평등을 분석하는 학문이다. 여성학을 전공한 변호사들을 중심으로 법인을 설립한 이유도 이런 포괄적 시각 때문이다. 법무법인 혜석은 성범죄 피해자 지원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노동시장에서의 구조적 성별임금격차, 직장 내 승진 차별, 가부장제 이데올로기에 기반한 가족법 체계 내 불평등, 양육권 문제, 젠더화된 상속 관행, 디지털 성폭력, 스토킹 등 젠더 권력관계가 작용하는 다양한 법적 영역을 다루고 있다. 또한 퀴어 이론의 관점에서 성소수자를 비롯한 사회적 소수자들이 경험하는 구조적 차별과 배제의 문제에도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여성주의 법학(feminist jurisprudence)의 관점은 이러한 다양한 법적 쟁점들을 보다 깊이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가해 사건의 변론을 맡지 않기로 결정한 이유는 무엇인가.

“저희는 젠더화된 권력 구조 속에서 구조적 불이익을 경험하는 의뢰인들을 위한 법률 지원에 집중하고 있다. 이는 성폭력 피해자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 차별, 가족법 분쟁, 스토킹, 디지털 폭력 피해자 등 다양한 영역에서 젠더 기반 불평등을 경험하는 의뢰인들을 포함한다. 이러한 지향점을 가진 저희가 여성혐오적 범죄의 가해자를 변호하는 것은 페미니스트 법리학의 관점에서 내부적 정합성이 떨어질 수 있다고 판단했다. 이는 다른 변호사들의 가해자 변론 행위를 평가하는 것이 아니다. 형사사법체계에서 피고인의 변호를 받을 권리는 법치주의의 기본 원칙이며, 이를 위해 헌신하는 많은 훌륭한 변호사들이 있다. 단지 저희가 가진 전문성과 경험을 바탕으로, 가장 효과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 영역에 집중하기로 한 것뿐이다. 변호사마다 자신의 전문 영역이 있듯, 페미니스트 법리학과 비판법학적 관점에 기반한 법률 서비스 제공하는 것이 저희의 강점이다.”

앞으로의 계획은.

“페미니스트 법학의 관점을 한국 법률 현장에 적용하는 실천적 작업을 이어갈 계획이다. 이번 이화여대 사건은 우리 사회의 젠더 권력구조가 어떻게 물리적 폭력으로 발현되는지를 보여주는 하나의 사례에 불과하다. 저희는 이러한 구조적 불평등이 작동하는 다양한 법적 영역에서 법률 지원을 제공하고자 한다.

저희 법인의 중요한 내부 목표 중 하나는 더 많은 여성주의 변호사들이 함께 일하고 성장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것이다. 언젠가는 페미니스트 법학에 관심 있는 잠재력 있는 법률가들을 위한 인큐베이터 역할도 하고 싶다. 여성주의적 가치를 실천하면서도 전문성을 갖춘 법률가들이 자신의 역량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는 공동체를 만들어가고자 한다. 이를 통해 저희만의 고유한 조직 문화와 업무 방식을 발전시켜 나갈 것이다.

또한 법조인과 법학도를 위한 페미니스트 법리학 교육 프로그램도 개발할 계획이다. 형식적 법 해석을 넘어 법의 젠더화된 권력관계를 비판적으로 분석하는 능력은 모든 법조인에게 필요한 역량이다. 이러한 교육을 통해 궁극적으로는 법체계의 구조적 변혁에 기여하고자 한다.

법은 사회적 관계를 구성하는 언어이자 도구다. 법은 중립적이지 않으며, 기존의 젠더 질서를 재생산할 수도 있고, 이를 변화시키는 힘이 될 수도 있다. 혜석은 법을 통한 사회변화의 가능성을 믿으며, 모든 사람의 존엄과 자유가 존중받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법적 실천을 이어갈 것이다. 이번 이화여대 사건을 통해 대학이라는 공간에서의 표현의 자유와 여성의 공적 발언권이 보장되는 환경이 마련되기를 희망한다.”

출처: [여성신문] 김세원 기자 saewkim@wome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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